강화도 역사 유적지를 다루면서 산성 전체를 훑는 글은 이미 포스팅이 끝났다. 중복은 피해야 하니 이番에는 북문지 일대에 남아 있는 방호벽 유구에 초점을 맞춰 아카이브한다. 남문에서 내려앉은 길과 달리 북문 쪽은 보존 처리가 덜 되어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대신 당시의 축조 기법을 원형에서 가깝게 확인할 수 있어 자료 수집 목적에는 적합하다.
현존하는 성벽 자체는 조선 후기에 중수된 기록이 남아 있다. 허나 북문 양쪽으로 뻗어 나간 성곽 외곽에 산재한 요철식 석축은 분류 체계가 다르다. 고려 시기 몽골 침입을 피해 도읍을 옮기며 급조했던 임시 방어 시설의 단면이다. 이후 조선 왕조 때 외성을 쌓으면서 일부를 헐고 재활용했기 때문에 석재의 절단면과 쌓기 수법이 불규칙하게 뒤섞여 있다.
현장에 가면 성벽 하단부의 돌 배열이 위층과 확연히 다른 구간을 발견할 수 있다. 상부의 다듬은 돌이 아래쪽의 거친 할석을 감싸며 덮어씌워진 형태. 지질학적 변화나 자연스러운 풍화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위적인 축조 단절이다. 학계 보고서에서도 해당 지점의 층위가 고려 말기와 조선 중기로 나뉜다고 명시하고 있으니 현장 확인 시 혼동이 없을 것이다. 이 데이터를 놓치면 강화도성의 시대별 방어 체계 변화를 추적할 기준점이 사라진다.
문화재청 공식 해설판에는 일반 관람객을 고려해 조선 숙종 연간의 성곽 축조 내용만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북문 외곽 200미터 지점에서 확인되는 석축들은 고려 말 임시 방벽의 흔적. 현장에서 발견되는 작은 할석들이 임시 방벽의 자재로 쓰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둘러봐야 이 유적의 진짜 층위를 읽어낼 수 있다. 사라진 방호벽의 반쪽짜리 기록이나마 이 자료에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