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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역사 유적지 — 신뢰할 수 있는 분석 데이터

고려 무인 정권의 마지막 보루, 강화도 임시 수도 유적의 실체

강화도에 남은 역사 유적지를 논할 때면 어김없이 삼랑성이나 보문산성 쪽으로 화제가 쏠린다. 근래 유행하는 답사 코스들이 대중의 인식을 그렇게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 고려 시기 임시 수도의 흔적으로 분류되는 유구들을 그대로 덮어두는 것은 아카이브 측면에서 심각한 누락이다. 몽골 제국의 침입 당시 조정이 육지에서 이곳으로 천도하며 구축한 행정 구획의 잔재는 아직도 지표 아래에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이 사료를 지도 위에 투영해 보면 흩어져 있는 기록들이 어떤 물리적 형태를 지녔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존하는 석성 축조물과 달리 토성과 목책 위주로 축조된 이 시기의 시설물은 무너지고 변형되었을 뿐 증발한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지리지를 살펴보면 과거 임시 궁궐이 있던 자리에 관아가 들어섰다는 항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자리에 지어진 관아 건물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지표 위에 판독 가능한 흔적이 사실상 소거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자체가 실시한 발굴 조사 보고서를 꼼꼼히 교차 검증하면 문화재 지정에서 배제된 유구들, 이를테면 잔존하는 지하 배수 시설의 축조 양식이나 성벽의 기단 구조가 정확히 몽골의 공성 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되었음이 입증된다. 땅에 묻혀 있을 뿐 사라지지 않았기에 이런 데이터를 남겨두지 않는 것은 수집가로서 직무 유기다.

대중이 흔히 묵인하고 지나치는 부분은 현지 지명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도 안의 특정 마을을 일컫는 옛 지명에는 궁의 부속 시설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명칭이 버젓이 현존한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공식 문화재 안내판에는 그 연원조차 제대로 명시되지 않은 채 주차장과 편의시설 배치에 맞춰 조작된 텍스트만 휑하니 붙어 있다. 200여 미터 간격으로 이어지는 옛 도성지의 기릅선을 따라 걷다 보면 안내판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민가 뒤편에서 축대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단면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구석의 토층 단면에서 도자기 파편과 기와조각이 섞여 나오는 물리적 사실은 인식론적 차원에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다. 사료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누가 가르쳐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유적군을 아카이빙하는 진짜 이유는 분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임시 수도 체제가 한국사 기록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기형적으로 돌아간 연속선상의 완충 지대이기 때문이다. 30여 년 동안 육지로 강제 격리되고 군사력을 쥐어짜던 구조물의 잔해가 지금껏 아스팔트 도로 밑에서 연달아 발굴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임진왜란 때의 방비 체계를 논하는 자료 정리는 사상누각이 된다. 체계적으로 수집된 좌표 데이터와 지도 기록을 묶어두는 수고로움 자체가 가치를 증명하는 공물이다. 당장 누군가 이 자료를 활용할지 말지는 전혀 관심 밖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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